가을맞이 축제의 하나로 펼쳐진 ‘제4회 헤이리 시네마 단편영화제’가 9월 3일부터 12일까지, 10일간 독립예술 영화전용관인 헤이리 시네마에서 펼쳐졌다. 그동안 참신하고 완성도 높은 단편영화를 상영해서 영화인들의 주목을 받았던 영화제가 'DANCE ON SCREEN’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새롭게 다가와 '춤'을 주제로 모두 35편(국내 21편, 해외 14편)의 단편영화가 7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상영되었다.

영화도 보고, 춤도 추는 '댄싱 워크샵'

영화제 3일째인 토요일 오후 “영화를! 춤으로!”라는 제목의 댄싱 워크샵 현장을 찾았다. 영화에 나오는 춤을 재창작하여 움직여보는 창의적인 무용 수업으로 6세에서 10세 미만의 어린이 열 명이 참여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두 편의 짧은 댄스 영화를 틀어주자 잠잠해졌다.
영화가 끝나자 이슬기 무용강사가 테이프를 나누어주며, 일정한 간격으로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 떨어져 앉을 수 있게끔 능숙하게 아이들을 이끈다.

댄싱 워크샵에서 상영된 외국 댄스영화 중 한 장면

댄싱 워크샵에서 상영된 외국 댄스영화 중 한 장면

자기만의 영역에 앉아 댄스강사의 동작에 따라 하는 아이들

자기만의 영역에 앉아 댄스강사의 동작에 따라 하는 아이들

춤이란 언어 대신 표정과 몸짓으로 자기의 느낌이나 생각을 전달하는 예술임을 스스로 깨우치도록 간단한 놀이를 통해 가르친다. 자기만 볼 수 있는 카드에 손목, 발목, 갈비뼈 등의 신체 부위 단어를 적은 카드를 나눠준다. 한 명씩 돌아가며 카드에 적힌 단어를 말없이 표정과 몸짓으로 움직이면, 나머지 아이들이 신체의 어느 부위인가 알아내는 아주 간단한 놀이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동작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용기를 내며 동작이 커지자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진다. 어느덧 분위기가 무르익자 실내조명을 모두 끄고 하나의 조명으로 어둠 속에서 몸을 비추며 그림자놀이로 이어간다. 아이들은 음악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며 자기만의 춤동작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림자놀이 춤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

그림자놀이 춤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

무리 중에 춤동작이 예사롭지 않았던 양하율(8세)어린이를 찾아가 인터뷰를 시도했다.
하율의 어머니, 이하나 씨는 “우리는 탄현면에 살고 있는데 제가 헤이리에서 미디어 교육을 받다가 영화제와 댄싱 워크샵 정보를 듣고 딸과 함께 참여하게 되었어요. 하율이가 낯선 공간에서 무엇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편이에요. 자기는 만들기를 하고 싶은데 오늘 꼭 가야 하냐고 묻더라고요. 제 딸은 춤을 티브이에서만 봐왔지 자기가 직접 춤을 추려니 어려울까 봐서 두려웠던 겁니다. 그런데 막상 지켜보니 우리 딸이 제법 잘 추네요. ㅎㅎㅎ 여기에 잘 온 것 같아요”라며 자랑스레 말한다.
옆에 있던 하율이는 “엄마가 가자 그래서 따라온 건데요. 그림자놀이가 재미있었어요. 다음에 또 오고 싶어요.”라며 씩씩하게 말했다.

일상에 스며든 춤, 그리고 영화

레바논과 월드컵 예선전이 벌어지던 화요일 밤, 영화제는 5일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섹션 5. ‘동행하는 춤’이라는 부제(副題)로 5편의 단편영화가 상영되는 헤이리시네마로 들어섰다.  영화를 보기 전에 리플릿에 적혀진 기획 의도를 살펴보았다. ‘즉흥적이며 서사적인 춤과 노래를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인생의 여러 조각 곳곳에 나의 몸을 통한 움직임만이 온전히 동행해줌을 느낍니다. “춤이나 한번 추고 노래나 한번 부르자!”라고 말하고 싶은 나의 존재들과 함께 보길 추천합니다.’라고 쓰여있었다.

순서는 딸들의 밥상(한국, 손희송), HIC EC NUNC (이탈리아, Emma Cianchi),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한국, 전아현), 여담들(한국, 남궁선), 한낮의 우리(한국, 김혜진)순으로 모두 5편이 1시간 반에 걸쳐 상영되었다.

섹션5. '동행하는 춤' 홍보 포스터

섹션5. '동행하는 춤' 홍보 포스터

영화가 종료되자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 위로 두 개의 의자를 가져다 놓는다. GV(Guest Visit, 관객과의 대화)가 바로 이어졌다.모더레이터(Moderater, 사회자)는 김포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치며 교육과 관련한 다수의 단편영화를 제작하고 장편영화 개봉을 앞둔 김석목 영화감독이다.
오늘의 초대 영화감독은 여담들(餘談,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본 줄거리와 관계없이 흥미로 하는 딴 이야기)을 만든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남궁선 감독이다. 얼마 전 제20회 뉴욕아시안영화제에 한국 영화로 유일하게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남궁선 감독의 영화 '십 개월의 미래'가 2등 상에 해당하는 '특별 언급' 상을 받았다고 한다.
사라져가는 풍경에 내몰린 청춘들의 상실감을 무성영화 형식으로 담아낸 게 인상적이었던 영화, ‘여담들’은 만든 남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이렇게 말했다.
“당시 영화 속의 친구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쓴 일기들을 모아 뒤섞은 뒤 카메라를 들고 나가 배우들과 사나흘 동안 찍었습니다. 동시녹음도 하지 않고 조명도 세팅하지 않은 채 배우들이 실제 그 공간에 있는 것처럼 찍었지요. 이 장면들로 만들고 이후 후반작업을 거쳐 무성영화 형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그건 형체가 없는 일기가 영화가 되어가는 과정이었죠. 친구들이 쓴 일기 내용이 상실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파편들을 붙여보니 영화를 주로 촬영한 한남동도 매일 풍경이 바뀌고 있고, 청춘들은 갈 곳이 없으며, 이 시대에서 해둔 건 없는 모습들을 담았습니다.”
이어서 영화를 함께 본 관객들의 질문이 여기저기에서 손들며 이어졌다. 영화 속에서 느꼈던 생각과 궁금한 내용에 대한 질문과 응답이 꼬리를 물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관객과의 만남(GV) 진행 모습 (좌) 사회자 김석목 감독, (우) 초대감독 남궁선 감독

관객과의 만남(GV) 진행 모습. (좌) 사회자 김석목 감독, (우) 초대감독 남궁선 감독

모든 순서가 끝나자 훌훌 자리를 털고 돌아서는 관객 한 사람의 발길을 잡았다.
운정에서 온 익명의 젊은 남자는 “맘카페에서 영화제 소식을 접하고 궁금해서 와봤습니다. 사실 단편영화에 대해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영화를 처음 시작하는 초년생들의 연습작품 정도로만 생각하고 봤는데 첫 번째 상영되던 뮤지컬 형식의 영화 ‘딸들의 밥상’을 보고 흠칫 놀랐습니다. 영화 완성도나 내용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때 없는 훌륭한 영화였습니다. 또한, GV도 함께 진행된 ‘여담들’과 ‘한낮의 우리’ 같은 영화는 저와 비슷한 시기의 암울한 젊은이의 일상을 담은 것 같아 동조(同調) 의식과 함께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아무튼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된 독립예술 영화전용관 헤이리 시네마를 가끔은 다시 찾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바쁜 듯 이내 사라졌다.


단편영화제를 기획하고 진행을 총괄했던 헤이리 시네마의 장현상 대표는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자평했다.
“이번 영화제는 기획 당시 키포인트(Key point)를 무용, 국제영화제, 확장프로그램으로 정하고 진행했습니다. 영화제를 마무리하면서 거둔 성과로는 무용 부분은 장르/미디어 융합 작품들을 재조명하고 무대공연 외의 다양한 매체를 통한 작품공유의 가능성을 제시하였습니다. 국제영화제 부분은 다국적, 다문화 감독들의 다양한 주제를 담은 무용 단편영화를 상영하여 다국적, 다문화 관객층 확장과 사회 문화적 담론을 이끄는 참여형 영화제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확장프로그램 부분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헤이리 시네마의 장점인 한곳의 복합문화 공간에서 편리하고 깊이 있게 진행하여, 교육적이고 문화 체험적인 장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영화제가 펼쳐지는 동안 파주시청의 지침에 따라 코로나19 대응에도 결코 소홀함 없이 철저하게 자체 방역 조치가 이루어졌다고 자신합니다.”
파주에서 펼쳐진 이색적인 영화제 ‘제4회 헤이리 시네마 단편영화제’를 준비과정에서부터 영화제가 펼쳐지던 기간 동안 직접 보고, 체험해보는 시간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우리가 극장에서 주로 봐왔던 장편 상업영화에만 국한하기보다는 시야를 조금은 넓혀 저예산 독립예술 영화에도 눈 돌려 비록 적은 시간이나마 할애해보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생각된다.

* 헤이리 시네마 (전화: 031-942-1031) / 홈페이지 www.hcine.kr
- 위치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93-119, 커피공장 103 카페 3층

* 취재 : 김명익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