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동식물의 대표, 깃대종

깃대종(旗-種)이란 ‘어느 지역의 대표가 되는 동식물의 종(種)’을 말한다. 이를 부연하면, 한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하면서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특징적인 동·식물로서, 그 지역의 생태적·지리적·사회적·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며, 이 종을 보전함으로써 그 지역 전체의 동식물 회생에 파급효과가 큰 것일수록 좋은 것이 깃대종이다. 즉, 그 지역의 동식물 중 실질적 ‘대표선수’다.
그 때문에 깃대종은 실제의 서식과는 무관하게 그 지역을 단순 상징하는 꽃/나무/새 등과는 달리, 실제로 그 지역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 파주시를 상징하는 꽃(市花)과 나무(市木), 새(市鳥)는 각각 코스모스, 은행나무, 비둘기다.

파주시 시화, 코스모스

파주시 시화, 코스모스

파주시 시목, 은행나무

파주시 시목, 은행나무

파주시 시조, 비둘기

파주시 시조, 비둘기

코스모스는 강인한 생명력과 더불어 다양한 색을 지닌 꽃이라 시민들의 ‘화합’과 ‘조화로운 삶’의 상징으로 꼽혔다. 은행나무는 대표적인 장수목이자 거수목인 까닭에 파주의 번영과 평화가 장구한 세월로 이어지는 염원과 합치된다. 만국 인민들에게 공통으로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시의 새(市鳥)로 삼은 것은 파주의 번영과 시민의 안녕이 한반도의 평화 통일로도 이어지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상징물들의 최대 약점은 모두 파주시에만 독특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도처에서 아주 흔하게 관찰되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파주시가 자랑할 수 있고, 파주를 대표하면서 보존 가치를 드높여 생물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는 파주의 진정한 동식물로 삼기에는 모자람이 많다.

시민화합에 기여하는 깃대종 선정

파주는 에코파주, 곧 생태문화도시이기도 하다. 서울과 안양을 합친 만큼의 광대한 면적은 생태계(Ecology) 보존과 친환경 개발이라는 소명도 내재하고 있기에, 그동안 파주시는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산과 강, 숲, 공원, 공지, 마을길... 등 장소를 불문하고 다방면에서 노력해 왔다. 그처럼 꾸준히 생태계의 문화적 성숙도를 높여온 파주시와 더불어 우리 시민들의 생태문화 의식 수준 또한 이제는 충분히 숙성돼 있다. 자생적인 조직인 산 파수꾼, 곤충 파수꾼 모임들도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제는 그런 꾸준한 노력과 열성적 활동들에 걸맞게 파주를 대표할 깃대종을 선정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성남시의 깃대종 3종 버들치, 청딱따구리, 파파리반디불이

성남시의 깃대종 3종: 버들치, 청딱따구리, 파파리반디불이

일례로 성남시에는 일찍이 청딱다구리(새), 버들치(어류), 파파리반딧불이(곤충)의 3총사가 깃대종으로 선정되어 시민들의 각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 이 깃대종은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도 선정할 수 있는데, 서울시의 경우 월드컵공원의 맹꽁이와 억새, 우면산 생태공원의 두꺼비, 밤섬의 물총새 등이 선정돼 있고 총괄 깃대종은 10여 종을 대상으로 현재 선정 작업이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깃대종 선정이 지자체 단위보다는 특정 지역 중심으로 활발한 편이다. 특히 국립공원에는 예외 없이 그곳의 깃대종을 선정하여 생태 보존에 활용하고 있는데, 소백산의 여우, 계룡산의 호반새, 주왕산의 솔부엉이... 등등이 그 예다. 제주 특산 희귀종인 해녀콩(외양과 열매 모두 작두콩과 비슷하지만 크기는 작다)을 해안가 깃대종으로 삼은 것도 그러한 경우다.

주왕산의 깃대종 솔부엉이

주왕산의 깃대종 솔부엉이

계룡산의 깃대종 호반새

계룡산의 깃대종 호반새

이 깃대종 선정에는 시민들의 적극 참여가 필수이고, 기간도 좀 걸린다. 업무 추진의 집중과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관련 부서와 전문가, 그리고 시민 대표가 참여하는 깃대종 선정 위원회를 결성할 필요가 있다. 그 뒤 이 위원회를 주축으로 시민 참여를 위한 홍보 기간을 거쳐, 1~2차 데이터 수집(시민 발굴+문헌 조사) 후 분류군별로 전문가 의견을 취합하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해야 한다. 이 전문가 의견과 설문조사 결과에 따라 후보군이 압축되고 이를 대상으로 다시 시민 의견과 선정위원회의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 확정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해치울 수 있는 프로젝트는 아니다. 서울시의 경우는 이 사업 추진에 필요한 전문기관의 사전 유료 컨설팅을 거쳤다.
이 기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참여 의식이다. 깃대종의 값어치가 있는 것들을 자주 대하고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관심한 이들이 시민이기 때문이다. 깃대종으로 선정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심하고 지켜나가야 할 주인공도 바로 시민들이다. 이 사업이 아름답게 결실될 때 그 공이 시민들의 화합 덕분으로 요약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생태계 보고인 파주에서 만나는 야생 조류들

파주시의 면적은 673.86 ㎢로 서울시에 안양시를 합친 것만큼 드넓다. 4읍 6면 7동에 414개의 자연마을이 있을 정도로 도농복합 지역이기도 하다. 더구나 대표적인 청정지역인 비무장지대를 품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환경 덕택에 파주는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쉬운 예로, 대백로/중대백로/중백로/쇠백로/황로 등을 총칭하는 게 백로인데 전국에 산재하는 이 백로 5종 모두를 어렵지 않게 대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파주다. 백로 연구가들에게 파주가 자주 선택되는 이유다. 겨울철이면 임진강변의 논 등에서 떼 지어 있는 가창오리/청둥오리/고방오리 등을 비교적 쉽게 대할 수 있는 곳도 파주다.
그뿐만 아니다. 천연기념물 202호 두루미와 천연기념물 203호 재두루미도 볼 수 있고, 독수리(천연기념물 제243-1호)는 덤이다. 가장 편히 넓게 관찰할 수 있는 곳은 심학산 산정의 정자에서 대하는 출판단지 앞의 습지이고 장산전망대에서도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다. 특히 공릉천은 운이 좋으면 횡재(?)를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10여 년 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공릉천에 떼를 지어 찾아오는 바람에 KBS에서 특별 보도까지 했던 천연기념물 325호 개리는 거위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다. 나아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천연기념물 제199호이기도 한 황새는 요즘 매우 보기 드문데, 그 황새가 공릉천을 찾는 탐조가들에게 짧게나마 자태를 드러낼 때도 있다.
운정호수공원에 가면 호수 안에서 대형 건조물 하나가 방문객들을 맞는다. 황조롱이의 두상인데, 운정호수공원의 상징물이 된 지 오래다. 황조롱이는 최근 민가나 도시 건축물 등에도 둥지를 틀어 가끔 매스컴에도 소개되고 있는데, 몇 해 전 모 방송국의 교육용 야생동물 장기 탐사 프로그램에서 이 황조롱이의 일생을 촬영한 곳은 초평도 맞은편의 암벽에 야생하는 녀석들이었다. 인근의 백연리와 공릉천은 황조롱이보다 약간 작은 쇠황조롱이의 사진을 찍으려는 탐조가들이 자주 찾고, 초보자들도 쉽게 원하는 사진들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조류 한 가지만 살펴봐도 파주는 아주 부자다. 특히 전국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겨울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이 파주다. 비록 대규모의 군집(떼) 형태가 아니어서 개체 수에서는 밀리지만, 종류에서는 단연 수위를 차지한다.

어떤 것을 파주의 깃대종으로 삼을까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만 간단히 예를 들어 살펴보자. 기자의 개인적인 추천 대상으로 꼽고 싶은 재두루미(조류), 황복(어류), 우리녹색부전나비(곤충)를 예로 든다.

출판단지 습지에 날아온 재두루미들

출판단지 습지에 날아온 재두루미들

임진강에서 잡은 황복

임진강에서 잡은 황복

우리녹색부전나비. 날깨 안쪽은 암갈색.

우리녹색부전나비. 날깨 안쪽은 암갈색.

재두루미는 탐조가들 사이에서 가장 섹시한 새로 꼽힌다. 백로가 백작 정도라면 재두루미는 귀족 중에서도 최고 작위인 공작에 해당될 정도로 그 품위 또한 최상급에 든다. 출판단지 앞 습지에서도 대할 수 있는데, 행운이 따르면 저어새와 함께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부끄럼을 많이 타는 저어새는 천연기념물 제205-1호인데, 전 세계에 겨우 2천여 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은 희귀종이기도 하다. 이 재두루미는 환경부가 선정한 한강 하구의 깃대종이기도 하다.
파주에는 파주를 대표하는 어종들도 있다. 황복과 참게, 웅어 등이 그에 해당한다. 기자는 그중 황복을 깃대종으로 꼽고 싶다. 자연산 황복의 몸값, 지금까지의 파주 홍보 효과, 대외적인 이미지 등에 비추었을 때 적합한 품종이라고 생각한다.
파주에는 곤충 연구가들의 발길도 잦다. 아직까지 청정지역으로 보존돼 있는 곳이 많아서다. 학생들의 곤충 탐색 때면 주홍배큰벼잎벌레, 풀색노린재, 썩덩나무노린재, 호랑꽃무지, 칠성무당벌레, 줄베짱이... 따위를 어렵지 않게 대할 수 있다. 기자는 그중 우리녹색부전나비(또는 금강산녹색부전나비)를 꼽고 싶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워서 눈길을 끌고, 그 때문에도 더욱 아끼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호숫가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는 흰뺨검둥오리들

호숫가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는 흰뺨검둥오리들

운정호수공원 내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한 맹꽁이 서식지

운정호수공원 내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한 맹꽁이 서식지

끝으로, 이 깃대종은 특정 지역용으로도 정할 수 있다. 이를테면 ‘운정호수공원의 깃대종’ 식으로. 현재 운정호수공원에는 눈길을 끄는 녀석들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철새이던 녀석이 텃새로 변한 흰뺨검둥오리이고, 또 다른 녀석은 특별 서식지까지 꾸려준 맹꽁이들이다. 흰뺨검둥오리는 몇 해 전부터 봄이 와도 돌아갈 줄 모르고 그냥 그곳에 머물면서 텃새화되었다. 하기야 그처럼 텃새화된 철새들이 없는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왜가리가 있고 겨울에도 볼 수 있는 여름철새 지빠귀 종류와 밀화부리도 심심찮게 보고되고 있다. 맹꽁이들은 운정3지구 개발 사업 때 발견된 녀석들을 보존하기 위해 특별히 서식지를 마련하여 옮겨온 것들이다.

* 취재 : 최종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