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사 검단조사진영(경기도 문화유산 자료)
소개
검단조사는 파주 검단산 자락에 검단사를 창건한 인물로 진감국사 혜소(眞鑑國師 慧昭, 774-850)의 검은 얼굴에서 비롯된 또 다른 별칭이다. 검단사의 역사를 기록한 자료는 전하지 않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의 경기 교하면에 “검단산에 검단사가 있다”고 기록하였으며 이익(李瀷, 1681-1763)의 『성호사설(星湖全集)』의 양락당팔경기(兩樂堂八景記)에 서는 검단사의 새벽 종소리를 검단효종(黔丹曉鍾)이라 할 정도로 조선시대에 교하의 이름난 사찰이었다.
검단사는 현재까지 사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사찰의 주전각인 법화전에는 조선 후기에 제작한 목조관음보살좌상(문화재자료 제41호)과 아미타회상도(1854)와 신중도 등이 봉안되어 있다. 이외에도 검단사의 창건주인 검단조사를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진영 1폭이 전하고 있다.
진영의 화면 크기는 가로 49.7cm, 세로 64.6cm이며 바탕천은 질 좋은 비단을 사용하였다. 진영에 명문이 없어 제작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화풍으로 보아 조선 후기인 19세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면의 각 요소를 살펴보면, 화면 왼쪽에는 진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적은 ‘검단사 조사(黔丹寺 祖師)’라는 진영의 제목이 적혀 있다.
조선 후기의 진영에 사용되는 진영의 제목, 즉 영제에는 법호와 법명에 승직과 대선사, 창건 혹은 중창 등의 업적 등이 서술되는데 반해 검단사의 창건주인 검단조사를 의미하는 조사만 명시하였다. 화면 속의 조사는 왼쪽을 향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으며, 얼굴은 선으로 이목구비와 주름, 그리고 얼굴의 핵심인 눈동자를 선명하게 표현하였다. 복식은 청록색 장삼을 입고 그 위에 가사를 걸치고 있는데, 가사는 조선 후기 진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색이 아닌 다양한 문양의 천으로 만든 것으로 어깨에는 이를 고정하기 위한 금속제 가사매듭이 있다. 지물로는 왼손에 수정염주를 쥐고 있으며 다른 손에는 불자(拂子)를 잡고 있다. 조사가 앉아 있는 의자 앞에는 향완과 향합이 올려진 향상이 놓여 있으며 바닥에는 박쥐문으로 장식한 화문석이 깔려 있다. 바닥 깔개로 화문석이 표현되는 것은 조선 후기 초상화의 주요한 특징인데, 검단사 진영의 화문석에는 원근법을 적용한 것이 보인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진영은 주인공의 앉은 형태에 따라 의자형과 가부좌형으로 나뉜다. 이 진영의 인물은 의자에 두 다리를 내려뜨리지 않고 결가부좌한채 의자 위에 앉아 있다. 의자는 등받이가 높고 그 위에 화문덮개 가 덮여 있으며, 의자의 옆면에는 학을 표현한 모습 등이 흡사 나전칠기를 연상시킨다. 이와 같은 나전칠기의 의자 표현은 동화사 보조국사진영(보물 제1639호)과 송광사 보조국사진영에서 볼 수 있다. 결가부좌한 의자좌에 나전칠기의 장식 외에도 의자에 놓인 향상의 표현 역시 고식(古式)의 진영에서 볼 수 있는 표현이다.
이처럼 검단사 조사 진영은 19세기에 조성되었으나 의자에 결가부좌한 자세, 주인공 앞의 향상, 가사와 의자의 세부 표현 등에서 조선 후기 이전인 고식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으며 화문석과 같은 표현은 후대를 거치면서 반영된 표현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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