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선생 묘(경기도기념물 제34호)
소개
조선초기의 명재상이며 청백리의 표상인 방촌 황희(村 黃喜, 1363~1452) 선생의 묘이다. 선생의 자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村), 시호는 익성(翼成),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선생은 고려 공민왕(恭愍王) 12년(1363)에 개성에서 출생하여 27세 때 문과에 급제성균관학록이 되었다. 1392년에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하였는데 조정의 요청과 동료들의 추천으로 성균관학관으로 왕이 직접 벼슬을 내렸다. 이후 여러 요직을 역임하면서 조선 태종대에 국가기반을 확립하는데 큰 업적을 남겼다. 세종 대에는 20여년 동안 국정을 총리하는 의정부의 최고 관직인 영의정부사로서 외교와 문물제도의 정비, 4군 6진의 개척, 집현전을 중심으로 한 문물의 진흥 등을 지휘하여 세종성세(世宗盛世)를 이루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묘역은 3단으로 넓게 조성되었고, 봉분 역시 규모가 크다. 봉분의 구조는 다른 묘의 형태와는 달리 전면을 ㄷ자 모양으로 화강암 장대석을 이용하여 전방을 향해 3단의 호석(護石)을 쌓아 봉분과 연결시킨 특이한 구조이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상석·향로석이 밀착되어 있으며 그 정면에는 4개의 화창이 투각된 장명등이 있다. 봉분좌측에 묘갈이 위치하며 그 아래로 동자상과 문인석이 각각 1쌍씩 설치되어 있다. 묘역의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원모재 앞 언덕에 신도비가 있는데 연산군 11년(1505)에 세워졌으며 신숙주가 짓고 안침이 썼다. 비문은 마모가 심해 판독이 불가능하며 옆에 1945년에 다시 세운 신도비가 있고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황희 선생 묘와 약 200m 떨어진 맞은 편 산자락에는 선생의 셋째 아들인 황수신(黃守身, 1407~1467)의 묘가 위치하는데 아버지의 대를 이어 영의정에 오른 인물이다.
위치 및 교통 안내
- 소재지 : 탄현면 정승로 88번길 23-67
- 문의처 : 031-940-5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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