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릉(사적 제203호)
소개
장릉(長陵)은 조선16대 임금인 인조(仁祖)와 그 왕비 인열왕후(仁烈王后) 한씨 의 합장릉(陵)으로 당초 문산읍 운천리 대덕골에 있었으나 영조 7년(1731) 석 물 틈에 뱀들이 집을 짓고 극성을 부려 지금의 위치로 옮겨 합장하였다.
인조는 선조(宣祖)의 다섯째 아들인 정원군(추존하여 元宗)의 맏아들로 능양군 (綾陽君)에 봉해졌는데 광해군 15년(1623) 인조반정을 통해 왕위에 올랐다. 인조는 27년의 재위기간 동안에 많은 일을 겪었는데 이괄의 난(李适-亂), 정 묘호란(丁卯胡亂), 병자호란(丙子胡亂)을 겪은 후 삼전도(三田渡)에서 청태종 에게 항복하고 소현(昭顯), 봉림(鳳林) 두 아들을 인질로 보내는 치욕을 당하였 다. 특히 정치적으로 당파간의 싸움이 격화되어 사회가 혼란스러워짐에 따라 대 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결국 인조 27년(1649)에 승하하였다. 인열왕 후 한씨는 1610년 혼인하여 효종(孝宗)과 소현세자(昭顯世子), 인평대군(麟坪大君), 용성대군(龍城大君)의 4형제를 낳았으며 42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장릉의 석물구조를 살펴보면 봉분 아래 로 12면의 병풍석을 세우고 그 바깥으 로 돌로 난간을 둘렀으며 봉분 앞에 상 석(床石) 2좌(座)를 배치하여 2위(位)임 을 나타냈다. 상석 중앙 정면에 장명등 과 양쪽에 망주석 2기를 배치하였고 그 아래로 문인석과 무인석을 각각 1쌍씩 세웠다. 봉분 주위로는 석마(石馬), 석 양(石羊), 석호(石虎)를 각각 2필씩 배치해 능을 호위케 하고 있다.
장명등, 병풍석 및 석수(石獸) 등은 태조의 건원릉 (建元陵) 석물양식을 따른 것이나 병풍석에 새겨진 문양은 이장하기 전에 있던 장릉의 전통적인 운문 (雲紋)과 십이지신상이 아닌 화문(花紋-목단과 연 꽃)으로 바꿨다. 그리고 8각형의 장명등에도 목련 과 연화문을 조각해 넣었는데 이는 18세기 능의 석 물 문양이 갖는 시대적 특징을 반영된 것으로 보인 다. 능 아래에는 정자각(丁字閣)과 비각(碑閣), 수 복방(守僕房)이 위치하고 있으며 재실은 홍살문의 동남쪽 작은 길 옆에 위치하고 있다.
위치 및 교통 안내
- 소재지 : 탄현면 장릉로 90
- 문의처 : 031-945-9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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